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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마지막 통화를 복원할 수 있다면

휴대폰이 울리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느 때처럼 짧고 평범했던 그 통화. 그러나 그 목소리가 이 세상에서 들린 마지막 소리였다는 걸, 나는 며칠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그녀의 가족은 무너졌고,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내게 단순한 의뢰가 아닌, 사람의 감정과 진실을 되찾는 사명처럼 느껴졌다. 진실은 사라진 듯 보였지만, 어딘가엔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휴대폰 속, 지워진 통화 기록 속에.

 


데이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 통화 기록 포렌식의 시작

사람들은 종종 '삭제했다'고 안심한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선 '삭제'는 흔적을 감추는 것이지,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다. 특히 통화 기록은 스마트폰 내부의 SQLite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며, 비록 삭제되었더라도 데이터베이스 카빙(DB Carving) 기법을 활용하면 통화 기록 포렌식으로 복원 가능하다.

나는 가장 먼저, 의뢰인이 넘겨준 고인의 스마트폰을 루팅(rooting)하여 접근 권한을 확보했다. 대부분의 통화 기록은 /data/data/com.android.providers.contacts/databases/ 경로에 위치한 contacts2.db 파일 안에 저장된다. 이 DB에는 단순한 번호뿐 아니라, 통화 시간, 통화 종류, 상대방 정보, 통화 지속 시간까지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이미 데이터가 삭제된 상태였다는 점.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Raw 데이터 카빙 기법이다.


‘contacts2.db-journal’ — 잊혀진 조각들에서 찾은 진실

스마트폰은 내부 DB 작업 시 'Journal 파일'을 사용하여 중간 작업을 임시 저장한다. 이 파일이 바로 우리가 찾던 디지털 흔적의 무덤이었다. 'contacts2.db-journal' 파일은 보통 작업 종료 후 자동으로 삭제되지만, 일부 상황에서는 잔존할 수 있다.

나는 이 파일을 hex 에디터로 열어 하나하나 바이트 단위로 데이터를 분석했다. 지워진 통화 기록은 무질서한 문자처럼 흩어져 있었지만,
특정한 패턴 — 전화번호 형식, ISO 날짜 포맷 — 을 찾아내어 시그니처 기반 카빙을 실행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통화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PM 10:42, 00:58초 통화” — 통화 기록 포렌식이 말해주는 진실

복원된 기록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통화하지 않던 인물과, 사라지기 직전 밤늦게 58초 동안 통화한 기록. 이 인물은 경찰 조사에서 '전혀 연락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인물이었다. 이 한 줄의 복원된 통화 기록이 사건의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통화 기록은 단순한 전화번호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말과 말 사이, 감정과 감정 사이를 연결하는 디지털의 흔적이다.

 


통화 기록 포렌식이란 무엇인가?

이쯤에서 정리해 보자.
**‘통화 기록 포렌식’**이란, 삭제되거나 은폐된 스마트폰의 통화 데이터를 전문적인 분석 도구와 기법을 활용해 복원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말한다.

핵심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디바이스 루팅/탈옥
  2. 통화 DB 파일(contacts2.db, mmssms.db 등) 추출
  3. Raw 카빙 및 시그니처 기반 복구
  4. 복구된 데이터의 무결성 확인 및 타임라인 분석

이 모든 과정은 고도의 기술과 신중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확한 법적 절차가 수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데이터는 법정에서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의 경계에서 — 통화 기록 포렌식의 책임감

누구나 통화 기록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기술은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보호법에 매우 민감한 주제이기에, 반드시 수사기관이나 법적 동의 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자문한다.
“내가 이 데이터를 복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통화 기록 포렌식이 누군가에게 빛이 될 것인가, 상처가 될 것인가?”


기술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사건 이후, 나는 유가족에게 복원된 통화 내역과 타임라인을 전달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지워진 감정의 퍼즐을 맞추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한 통의 통화가, 죽음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열쇠였다는 걸 알게 되자, 눈물과 안도가 뒤섞인 반응이 돌아왔다.

그 순간, 나는 다시금 확신했다.
통화 기록 포렌식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는 걸.


마무리 — 잊혀진 목소리를 위한 디지털 포렌식

당신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 그 안에는 당신이 살아온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기록이 사라진 진실을 밝히는 유일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통화 기록 포렌식은 그런 진실을 되살리는 기술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오늘도 다시 hex 코드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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